작성자 :봄누리

등록일 :2002-04-14 20:26:24

조회수 :16,219

아침을 느지막이 먹고
어제부터 쌓인 설거지를 마치고
나갈 준비하니 벌써 2시가 다 되어 버렸네요.
날씨가 너무 좋아 청계산에 잠깐 들렀다가
정동문화예술회관으로 가기로 했답니다.

산아래 둘러 퍼진 꽃나무들, 따뜻한 바람,
정말 아름다운 봄날이지요.
바람은 좀 세게 불었지만요.
배밭의 배꽃들이 어찌나 예쁘게 피어 있든지
몰래 들어가 보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았네요.
약수터까지만 올라갔다가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고
이제 막 솟아오른 여리디 여린 나뭇잎을 조심조심 만져보니
투명하기까지 하더군요.
과천에서 청계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여러가지지만
우리 가족은 특히 이 길을 좋아해요.
다른 길보다 산 입구가 정말 운치있고 예쁘거든요.
일명 <예쁜산>이라 별명을 붙여줬죠.

청계산을 뒤로 하고 시내로 출발,
정동문화예술회관에 도착해 자리를 찾아 앉으니
무대 앞쪽이라 배우들의 생동감 있는 모습이 실감나게 보여 좋았어요.
대사는 없고 박진감 넘치는 춤으로만 내용을 이끌어 가더군요.

줄거리는 태권도를 수련하는 도장에 대립하는 다른 무술인이
쳐들어와 사부를 죽이고 수련생들을 해쳤는데 두명의 수련생이
말뚝이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사부의 원수를 갚고
다시 도장을 일으켜 세운다는 좀 유치한 내용이죠.

하지만 현란한 태권도의 힘있는 동작들, 격파, 북춤,
무대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듯한 춤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무대장치도 웅장하고 화려하고요.
월드컵을 겨냥해 외국인을 주대상으로 만든 작품인 것 같아요.
귀를 울리는 북소리와 신나는 음악소리가 엄청 큽니다.
배우들의 태권도 실력이 굉장하고 태권도 동작으로 이루어진 춤도
멋있고요.
초등생이상 남자아이들은 참 좋아하겠어요.
외국인들도 많이 눈에 띄더군요.
스트레스 해소하기에 딱인 공연 같아요.

한새는 음향이 너무 컸는지 재밌었다고는 하면서도
깜짝 놀라기도 하고 끝나고 나니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도 공연 다 끝나니 잽싸게 무대로 올라가
배우들이 격파한 송판 조각을 두개나 줏어 오는 거 있죠.
아마 격파가 제일 인상깊었나봐요.
지난번 개구리 음악회때 앞에 나가 개구리 소리 흉내내기 한 후로
무대에 나가는 걸 겁을 안 내내요.
꾸러기 음악회때도 오카리나로 자전거 불 사람 나오라고 하니까
거리낌없이 케스터네츠 들고 나가려는 거 있죠.
자기는 그걸로 연주한다고요. ㅎㅎ
그걸로는 안된다고 막았죠.

오늘밤엔 그 송판조각 머리맡에 놓고 자게 생겼어요.
아이랑은 많이 공연보러 다녔지만 남편과 세식구 모두 가기는 오랜만이었어요.
앞으로는 남편도 소외시키지 말고(하긴 아이들 공연 보기 싫다고 지금까지 자기 스스로 소외를 자처했지만) 같이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