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승호아빠

등록일 :2001-11-29 15:13:45

조회수 :17,116

망까기를 기억하십니까?

옛날 골목에서 친구들과 납작한 돌을 가지고 놀던 놀이입니다. 그 때는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놀이를 생각해냈을까 놀랍기만 합니다. 돌을 멀찍이 세워 놓고 다른 돌을 던져서 그 돌을 넘어뜨리는 1단계에서부터 시작해서 다리 사이에다가 돌을 끼우고 그걸 흘리지 않으려 애쓰며 걸어가서는 톡 떨어트려 돌을 넘어뜨리기도 하구요, 겨드랑이 사이에다가 돌을 끼워서는 공격하기도 하구요. 점 점 고난이도의 기술을 구사해야 했던 망까기. 정말 온 몸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였습니다.

저는 돌 하면 망까기가 생각납니다. 헌데, 갑자기 왜 돌 이야기를 하느냐구요? 저번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돌 박물관'을 다녀왔거든요. 정확히 말하자면 '세중옛돌박물관(http://www.oldstonemuseum.com)'에 다녀왔습니다.

유아영어게시판에 자주 들르시는 분들은 왜 제가 '아이'가 아니고 '아이들'을 데리고 갔는지 의아해하실 것도 같은데요. 처형네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갔거든요. 처형네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 1학년으로 제 아들인 승호 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와 형입니다. 승호가 외아들인지라 사촌 누나와 형을 만나서 노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이 박물관은 경기도 용인시 양지리에 있는 5천평의 땅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양지 I.C. 에서 빠져 나온 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만 가면 나옵니다. 아주 찾기도 쉽고 서울에서 멀지도 않아 경기권에 계신 분들은 다녀오기 좋을 것입니다. 게다가 돌 박물관은 그리 흔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 희소성 때문에라도 한 번쯤 가볼 만한 곳 아니겠습니까?

11월 24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처형 집이 있는 마포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출발했습니다. 길이 막힐 것을 대비해서 좀 더 일찍 출발하려 했으나 큰 아이가 학교 끝나는 시간이 그때인지라 어쩔 수 없었지요. 강변도로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 고속도로로 진입했습니다. 톨 게이트 근처에 가니까 길이 많이 막히더군요. 중간에 용인 휴게소에 들러 아이들은 자장면을 먹고 승호 엄마는 우동을 먹었습니다. 저요? 저는 밥 대신 약 먹었습니다. 그 전 날 동창회에 갔다가 너무 과하게 음주가무를 즐겼던 탓인지 속이 안 좋아 뭘 먹지를 못하겠더군요. 하여간 결국은 크게 탈이 나서 이 날 갔다 와서부터 일요일까지 죽만 먹으면서 계속 누워있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1시 30분이었습니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거의 2시간이나 걸렸네요. 역시 주말에 움직이려면 길이 막힐 것을 각오해야 하나봅니다. 우선, 입장권을 샀습니다. 그런데, 입장료가 조금 비쌉니다. 어른이 5천원이고 어린이는 2천원입니다. 이때의 어린이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를 말합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는 무료입니다. 그리고, 30명 이상이 가게 되면 할인이 됩니다. 자세한 요금은 홈 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세요.

우선, 이 박물관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에 대해 소개한 글을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퍼오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세워지는 세중 옛돌 박물관은 5천여 평의 수려한 자연 경관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희노애락의 언덕, 지역과 지방을 따라, 탐라국의 동자들, 생활 속의 돌, 돌짐승과 함께 민속신앙속의 돌, 한국 불교와 돌, 벅수 동네, 동자들의 마을, 십이지신상 조형탑 등 10개의 야외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을 찾는 국내외 애호가들께서는 실물로 전시된 돌조각 작품들을 감상하시며 심미안을 만족시키실 뿐 아니라, 선인의 숨결을 느끼시고 더불어 자연의 활력과 문화의 향기를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왕릉과 사대부가의 묘에서 망자의 혼을 지키고 위안하던 문인석, 무인석과 그 앞에서 희화적인 얼굴로 왕릉을 보호하던 석수,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마을에 들어오는 악귀와 외적을 막아주던 장승과 벅수, 높이 올라서 먼 곳까지 마을의 안위를 살피던 솟대,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귀여운 모습으로 지나던 나그네의 발길을 붙드는 동자석, 제주의 상징이 된 돌하르방, 마을의 효자를 표창하고 기리는 효자석 등의 민중 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우리의 돌 조각들과 사찰에서 예배와 기원의 대상이 된 석탑, 석불과 중생의 마음에 한줄기 빛을 주고자 밝혀두었던 석등, 덕망 높은 스님의 안식처가 된 부도 등의 불교 유물과 선인들의 생활도구로 사용되는 연자방아, 맷돌, 다듬이돌, 우물돌, 돌솥 등 10,000여점의 우리 옛 돌조각들을 전시한다.

출처 : 세중옛돌박물관(http://www.oldstonemuseum.com)

주차장에서 보면 바로 앞에 조그마한 동산이 보이는데 빼곡하게 돌조각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일명 '희로애락의 언덕'이라는 별칭이 붙은 전시관인데 별칭 그대로 거기에 세워져 있는 돌조각들의 얼굴이 희로애락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모습의 조각에서부터 눈물까지 표현되어 있는 슬픈 얼굴의 돌조각까지 정말 다양한 표정의 돌조각들이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죠.

여기 있는 대부분의 돌상들을 '벅수'라고 하는데 벅수란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마을에 들어오는 악귀와 외적을 막아주던 돌상을 말한다고 위에서 설명드렸죠? 크기가 승호보다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4학년인 아이보다 큰 것도 있는 등 매우 다양했는데, 대체로의 느낌은 '귀엽다' 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돌상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으니까 아주 장관입니다. 그 박물관에 있는 10000여점에 달하는 돌상들은 한 개인이 수 십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열정이 대단하죠?

'희로애락의 언덕'을 내려와 좀 더 올라가면 박물관 소개 글에 나온 대로 각 지역별로 분류된 돌조각들이 나오고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동자상들만 모아 놓은 곳이 나오는가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돌짐승들도 나옵니다. 원래는 작품의 보호를 위해 그러면 안 되는데 우리 아이들은 그 돌짐승에 올라탄 후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돌짐승은 주로 말, 소, 호랑이 같이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의 곁에 늘 있던 동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멧돌이나 연자방아 같은 생활용품들도 있었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그걸 수첩에다가 열심히 그리더군요. 나중에 일기에다가 적는 답니다.


위 사진은 동자상이구요.


이것은 벅수 사진입니다. 귀엽죠?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조각 중에서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멧돌이 되겠습니다.

눈치 빠르신 분들은 알겠지만 여기 박물관은 야외 박물관입니다.
나즈막한 산의 가운데에 길을 내고 양 옆의 조그마한 언덕에다가 수집한 돌조각들을 모아놓은 구조입니다. 그리고, 군데군데 정자 같은 것들을 만들어 놓아 구경하다가 지친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배려해 두었습니다. 또한 야외 전시장 전체에 은은한 가야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경치요? 당연히 좋습니다.
박물관의 홈페이지에 가면 옛 돌조각들을 구경하는 것이 박물관을 찾는 첫째 목적이 되겠지만 조용하고 경치 좋은 야외에 나와서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과연 그렇더군요.

제가 갔던 날은 11월 24일로 조금 추웠고 다소 늦은 가을이라 단풍의 절정이 지났는데도 박물관 곳곳에는 붉은 단풍나무 잎들이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으며, 가을 분위기와 겨울 분위기가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날씨가 따뜻한 봄이나 초가을에 가면 제일 좋을 것 같지만 눈 내리는 겨울에도 분위기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앙증맞은 돌조각들 위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실내 전시관이 하나 있긴 합니다.
카페와 전시관이 같이 있는데 그곳에는 신석기 시대와 구석기 시대의 유물들 몇 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카페에서는 각종 차와 팜플렛을 팔고 있던데 추운 날 따끈한 차 한 잔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출출하신 분들은 가락국수 한 그릇 먹어도 되구요.

특히 인상에 남았던 전시관은 일본 사람들이 뺏어갔던 돌조각들을 다시 찾아와 한 자리에 모아놓은 제14전시관이었습니다. 아주 평범하게 생긴, 옛날 우리나라 마을의 어귀 어디에나 있었을범직한 돌조각들이 모여 있더군요. 그것을 일본 사람들은 일본으로 유출했다고 합니다. 거 참.. 교통도 안 좋았던 시절 왜 평범한 돌조각들을 굳이 가져가려고 했을까 의아심이 들다가도 이런 평범한 것들도 저렇게 많이 가져갔는데 국보급은 도대체 얼마나 빼돌렸을까 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은근히 화가 나더군요. 승호 엄마가 옆에서 영국 사람들이 이집트 유물 훔쳐가서 전시해놓고 돈 버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니냐고 그럽니다. 아무튼 이 전시관은 제가 박물관에 가기 전에 담당자에게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어 보았을 때 추천해준 곳이었습니다.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카페가 있는 건물의 화장실입니다. 여자 화장실은 안 들어가봐서 모르겠는데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는 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절구통 같이 생긴 돌로 외형을 만들어놓았는데 두 사내아이가 모두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 날 촬영한 사진 두 장을 감상하실까요?



위의 사진은 박물관의 위쪽에서 아래쪽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가운데 포장된 길을 따라 양옆으로 자세히 보시면 다양한 모습의 돌조각들이 보일 겁니다. 주위에 나무들도 많은데 그 중에는 대나무도 있군요. 아래 사진은 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이가 전시되어 있는 해시계를 수첩에다가 그리고 있는 동안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승호의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길 건너편에 십이지신상 조형탑이 보입니다. 사실 위에서 말씀드린 화장실의 모습도 사진으로 찍었는데 그만 볼일 보고 있는 1학년 사내아이의 얼굴 모습이 너무 잘 나오는 바람에 프라이버시를 고려해서 공개를 못 하게 되어 아쉽네요.

자, 이제 아이들의 반응을 살펴볼까요?

일단 겉으로 보기에 제 아들 승호와 1학년인 사내아이는 돌조각에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집에 오면서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오늘 돌조각들 보니까 어땠냐?' 하고 넌지시 물었거든요. 승호는 무섭다고 했구요, 1학년인 사내아이는 탑 블레이드 팽이로 그 돌을 다 부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탑 블레이드 이야기가 또 나오는데요. 사실 두 꼬마는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동안 가지고 갔던 탑 블레이드 팽이 돌리느라고 정신 없었습니다. 낙엽 쌓인 땅에다가도 돌리고 절구통 안에다가도 돌리고(절구통이 꼭 탑 블레이드 만화에 나오는 팽이 시합장과 비슷하게 생겼거든요) 길에서도 돌리고 하여간 야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번에 만화에서 탑 블레이드 팽이가 돌을 부수는 장면이 실제로 있었다고 하는군요. 1학년 사내아이는 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반면 4학년 여자아이는 조금 다르더군요. 재미있었다고 했습니다. 메모도 중간 중간 하고 말이지요. 제일 진지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애당초 박물관에 가면서 아이들이 돌조각에 심취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른인 저도 돌조각 자체 보다는 전체 분위기를 보러 갔기 때문입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야외 전시장에 가득 차있는 돌조각들이 나에게 주는 느낌이 어떨까 그걸 맛보고 싶어 간 것이니까요. 분명 세 아이들도 돌조각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몰랐더라도 박물관 전체가 주는 느낌만은 마음 속 깊이 새겨두었을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근처에 굴러다니던 돌에다가 얼굴상을 새기고 동물상을 새기면서 그들의 마음을 심었듯이 말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눈 오는 날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은 그런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