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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휘원 / 숭인원(홍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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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휘원 / 숭인원(홍릉)

영휘원 / 숭인원(홍릉)


공간소개
대한제국 황실의 비극적 역사

홍릉은 원래 명성황후의 무덤이었다. 대대로 왕가의 묘지로 쓰이던 터였으며 명성황후의 무덤이 안장된 후 홍릉이라 불렀다. 명성황후의 무덤은 남양주시로 옮겼지만 여전히 홍릉이란 이름이 따라다닌다. 홍릉에는 현재 영휘원과 숭인원이 있다. 영휘원(永徽園)은 고종황제의 후궁이었던 순헌황귀비 엄씨의 원이다. 원은 왕의 사친 왕세자와 그 비의 무덤을 부르는 이름이다. 순헌황귀비는 철종 5년 태어나 철종 10년에 궁궐에 들어가 명성황후를 모시는 시위상궁이 됐다. 을미사변(1895) 후에는 아관파천 때 고종황제를 보필했고 광무 원년에는 의민황태자(영친왕)을 낳아 귀인에 봉해졌다. 그리고 광무 7년에는 황귀비로 책봉됐다.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명성황후가 떠난 그 자리를 대신하는 셈이다. 

옛 홍릉에는 영휘원 외에 숭인원(崇仁園)도 있다. 고종황제의 넷째아들 의민황태자의 장자인 이진의 묘다. 이진은 의민황태자와 일본인 황태자비 마사코 사이에서 태어난 장자로 순헌황귀비의 손자인 셈이다. 의민황태자 내외의 귀국 하루 전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순종황제의 명으로 홍릉에 묻힌 것이다. 부모보다 일찍 죽으면 불효라 했지만 어린 진의 억울한 죽음을 애석하게 여긴 순종황제의 배려였다.

순헌귀비 엄씨와 그 손자가 잠들다

서울 한복판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있는 영휘원과 숭인원은 대한제국 망국의 한이 담겨 있는 사적지다. 영휘원에 들어서면 영휘원에 앞서 숭인원을 만난다.

숭인원은 첫돌도 채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의 무덤을 원으로 만든 것이다. 비록 어린 원자의 무덤이지만 능원의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다. 다만 강이 낮고 봉분이나 석물들이 어린아이의 무덤임을 알려줄 뿐이다. 빛바랜 정자각의 단청에도 그 슬픔이 깃든 듯하다. 동편에는 비각이 서 있는데 그 안의 비석이 한층 외롭게 느껴진다.

숭인원에서 숲길을 지나면 영휘원에 이른다. 그 사이에는 제사 때 물을 긷는 제정이 곡장에 둘러싸인 풍경도 만난다. 영휘원 정자각은 아름다운 오색단청을 자랑한다. 숭인원과 대비될 만큼 또렷한 색감을 가진다. 오색단청은 미관뿐만 아니라 일반 건축물과의 차별화를 위해 만든 것으로, 궁전이나 법당의 권위를 나타낸다. 음양오행 사상을 중심으로 길흉화복 기원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제국 황실의 비극이 서려 있어 슬픔이 묻어나며 숭인원에 비해 화려한 색감은 그 슬픔을 애써 감추려는 듯하다. 순헌황귀비는 살아생전에 근대화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도 영휘원 주변에는 과학기술원을 비롯해 대학교, 각종 연구원, 벤처벨리가 영휘원의 뜻처럼 아름답게 에워싸며 원을 그리고 있다. 
  
  • 숭인원 안내문
    숭인원에는 채 한 살도 채우지 못한 의민황태자의 맏아들 이진이 묻혔다.

  • 고종의 후궁 순헌황귀비 엄씨의 묘소와 정자각
    고종의 후궁 순헌황귀비 엄씨의 묘소와 정자각

  • 제정 전경
    영휘원과 숭인원 사이에 있는 제정(祭井)은 제사 때 사용할 물을 긷는 우물이다.

  • 순헌황귀비 엄씨의 묘비
    영휘원의 비각에 있는 순헌황귀비 엄씨의 묘비

  • 숭인원 정자각 안의 모습
    숭인원 정자각 안의 모습

  • 홍창살 너머 숭인원의 전경
    홍창살 너머 숭인원의 전경은 영휘원과 그 모습이 흡사하다.

  • 홍창살 너머 정각과 영휘원 전경
    홍창살 너머 정각과 영휘원 전경

  • 조선 왕계도
    영휘원과 숭인원이 조선조 고종의 계보임을 설명하는 조선 왕계도


출처: 서울 열린 데이터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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